붉은군대는 군부대에서 최전방군으로 발전하며 우여곡절을 겪었다. 1930년 1월 이전에 중앙위원회에는 붉은 군대를 조직하기 위한 통일된 계획이 없었습니다. 따라서 여러 곳에서 적군의 조직과 명칭은 나름대로 다릅니다. 1930년 1월, 중앙위원회는 전국의 적군 수와 조직을 통일하기로 결정하고, 같은 해 6월과 7월에 여러 개의 대규모 적군 부대를 제1~8군으로 조직했습니다. 붉은 군대는 지역에 따라 제1군단, 제2군단, 제3군단으로 나뉘었다. 그러나 '전선군'을 창설하라는 지시는 내려지지 않았다.
같은 해 8월, 주덕과 마오쩌둥이 이끄는 제1홍군군단과 펑더화이가 이끄는 제3군단이 후난성 류양시 융허에서 회합을 가졌다. 두 번째 창사 공격에서는 통합 지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제1전선군을 창설했습니다. 중앙에서는 이 상황을 알고도 여전히 전선군을 조직하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았고 군단과 전선군을 폐지할 데 대한 의견도 있었다.
1931년 11월, 제4군과 새로 창설된 제25군이 합동으로 황안현을 공격했는데, 통일 지휘를 용이하게 하기 위해 중앙에서는 제4전선군의 창설을 계획하지 않았다. 정부. 1931년 말, 중앙 정부는 전선군을 조직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이 계획에 따르면 전국의 대규모 적군 부대를 기본적으로 제1전선군과 제2전선군으로 편성하고 명칭을 변경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실시되지 않았습니다.
제1·4전선군 창설은 중앙정부의 계획은 아니었지만 결국 현실이 됐다. 당시 중앙정부와 여러 지역의 연결은 불편한 교통으로 인해 많은 어려움을 겪었고, 여러 지역의 상황도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중앙정부도 이후 지시에서 이러한 사실을 인정했다.
붉은 군대의 주력부대로 이 두 사단 외에 붉은 군대 제2군단과 제6군단도 있다. 1936년 7월, 이 두 군단은 중앙위원회의 지시에 따라 제2적색전선군으로 통합되었다. 그 결과 제3전선군은 인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