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무홍량의 원래 이름은 조한문(조경평)이었다.
단무홍량은 일본인이 아니며, 출신지는 중국 랴오닝성이다. 우리나라에는 단목이라는 성(姓)이 존재하고, 단무는 우리나라 성(姓)의 역사가 매우 길지만, 사실 단무홍량은 두안무로 불리지 않고, 본명은 조한원(조경평)이고, 단무홍량은 단목이다. 그가 자신에게 붙인 이름. ?
단무홍량(Duanmu Hongliang)이라는 필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현재까지 인터넷에서 두 가지 설명을 찾아볼 수 있다. 한 가지 이론은 Duanmu Hongliang이 양아버지의 성에서 가명을 변경했다는 것입니다. 조한문(曹한문)이 박해를 피하기 위해 이름을 단목홍량(塔木紅梁)으로 바꾸었다는 설도 있다.
단무홍량의 인물체험
1932년 칭화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했고, 같은 해 '좌좌회'에 가입해 소설을 출간했다. "어머니". 1933년 소설 『호친기초원』을 집필하기 시작해 1935년에 완성했다. 이 작품은 1930년대 동북작가들에게 중요한 영향을 미친 걸작 중 하나가 되었다. 1949년 신중국 건국 직전, 단무는 홍콩에서 베이징으로 돌아왔다. 1960년 5월 종야오쿤과 결혼.
단무는 1980년 북경작가협회 부회장에 선출됐고, 1984년에는 중국작가협회 이사로 선출됐다. 1985년에는 『조설금』(부인 종야오쿤과 공동 집필) 제2권이 출판되었다. 1996년 10월 5일 84세의 나이로 베이징에서 질병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