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이 너무 길고 식량과 풀의 수송이 따라오지 못해 병사들은 굶주렸고 당연히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었다. 실제로 고려는 역사상 중국과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해왔고, 고려는 한반도 삼국 중에서 가장 강대국이다. 그러므로 수나라에서는 수나라의 문제(文帝)가 양건왕으로 추대되었다. 이는 당시의 관계가 여전히 좋았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두 나라의 전쟁은 수나라 양제의 즉위와 함께 시작되었다.
수나라 양제가 즉위한 뒤 대한제국의 왕을 모집해 왕조에 합류시키려 했으나 거절당하면서 이 전쟁이 시작됐다. 수양제는 선조들이 살아 있을 때 정복한 제국들에 의지하여 점점 더 강해졌고, 수양제는 더 이상 이러한 영토에만 만족하지 않아 고려 땅을 정복하여 자신의 용도로 삼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수양제는 거듭해서 대한제국왕을 조정에 초대했는데 이는 사실상 대한제국왕에게 위협이 되었지만, 대한제국왕은 수양제를 무시하고 동의를 거부하였다. 이에 수양제는 더욱 노하여 무력을 사용하여 대한왕을 정복하고 한국을 빼앗으려 하였다.
고려 수양제를 단숨에 쓰러뜨리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수양제는 전쟁에 필요한 물자를 충분히 준비하기 위해 사람들에게 배를 만들라고 명령하기도 하여 많은 사람이 대량으로 죽었습니다. 그러나 수양제는 여전히 전쟁을 준비하며 곳곳에서 식량을 모으고 있었다. 또한, 곡식과 풀의 수송로가 길어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수나라 양제는 용지운하를 파는 데 100만 명이 넘는 인부까지 투입했기 때문에 이에 대비하기 위해 국민의 힘을 기울였다. 피해가 심각했고 주민들은 극도로 불만을 표시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장기적인 공격과 부족한 식량 수송으로 인해 수나라가 패배했다. 실제로 보급품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만을 품은 사람들도 있었고, 수나라 양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려를 격파하고 싶었지만 오랫동안 식량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를 예상하지 못했다. 병사들을 수송하지 못하여 배가 고프고 추웠으며 고려에 포위되었으므로 이 전쟁에서 수나라 양제가 패하였다. 그는 이 결과에 불만을 품고 또 다른 전쟁을 시작했으나 역시 실패로 끝났다. 이 전쟁 역시 수나라의 활력에 큰 타격을 입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