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사마의의 손자가 서진의 진정한 건국 통치자였습니다. 사마염은 결국 나라를 통일하여 80년간의 분열을 끝냈습니다. 사마염이 죽자 그의 아들 사마중이 그 뒤를 이었습니다. 물론 그는 나라를 통치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의 권력은 점차 사라졌습니다. 그의 통치 기간 동안 팔왕의 반란이 발생하여 왕실 내부에 큰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이 시기에 서진의 침략을 받은 유안은 서진 내전의 와중에 한나라를 세울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서진은 이름만 존재했고 들판에는 병사들로 가득했습니다. 당초는 상황을 통제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사마의와 진회 황제의 관계는 점점 더 냉랭해지고 있었습니다. 낙양은 오랫동안 맹주였던 진회였습니다. 심지어 사마의는 '열 전선의 매복'이라는 명목으로 낙양의 정예 병사, 왕자, 대신들을 모두 사로잡아 낙양을 텅 비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내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진의 회왕은 사마의에게 칙령을 내렸고 두 사람은 헤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사마의는 얼마 지나지 않아 죽었지만 오랜 내전으로 서진의 세력도 약화되었습니다. 훈족의 침략에 직면한 진나라는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았습니다. 회진은 도망치던 중 체포되었고 그의 아들은 죽었습니다.
봉건제였던 송나라, 서진, 명나라와 달리 많은 사람에게 작위를 주었기 때문에 팔왕이 그렇게 큰 소동을 일으키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로부터 저는 회진의 죽음과 장안의 오경 사마염의 아들 사마예의 죽음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서진이 저항할 힘을 완전히 잃자 대귀족들이 낙양에서 강남으로 옮겨가자 사마예는 반란을 일으켜 곧 유공에게 망명하여 서진 전체가 멸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