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디오 내레이터:그는 누구인가요? 그의 이름을 들어보셨나요? 그는 중국 동북지방 출신의 허젠 청소년입니다. 그는 한국에서 데뷔한 최초의 외국인 아티스트로서 한국 주류 연예계에 빠르게 진입했습니다. 네티즌이 뽑은 최초의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눈부신 춤의 왕자, 타국에서 홀로 고군분투하는 착하고 강인한 청년, 팬들의 사랑과 지지를 한 몸에 받는 아이돌. 그의 이름은 한겅이며, 전설과 화려함 뒤에 숨겨진 그의 이야기는 씁쓸한 표류입니다. 견디기 힘들고 고통스러웠던 사람들, 갈고 닦고 버텨온 사람들, * * * 세계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자신의 젊음을 알아본 중국의 10대 소년이 얽혀 있습니다....
후씨:앞을 보고 뒤에 있는 것에 주의를 기울이세요. 뒷이야기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한국에서 일하는 한 중국인 소년은 재능과 용기, 인내심, 친절함으로 팀원들과 함께 아시아의 연예계를 빛내고 있습니다. 소년의 이름은 한겅입니다. 중국적인 요소를 가지고 세계로 나갔다가 국제적인 요소를 가지고 중국으로 돌아온 소년입니다. 오늘의 주인공, 한겅을 소개합니다.
(한겅 등장)
후씨:먼저 여러분께 인사드립니다.
G:안녕하세요 여러분, 슈퍼주니어 M의 캡틴 한겅입니다.
(박수)
호:한겅이는 직함이 있으니까 어디를 가도 캡틴이라고 말씀드리는 게 중요할 것 같아요.
(청중 웃음)
호:사실 슈퍼주니어M의 중국 프로모션도 많은 분들에게 알려졌어요. 오늘은 여러분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갖겠습니다. 한겅 형은 저와 친한 친구이기 때문에 특별히 이야기하기 좋은 상대는 아니라고 생각해요. 저는 그를 잘 알고 있지만 여러분은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친숙하고 듣고 싶지 않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럼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할까요?
(모두: 비하인드 스토리!)
호:뒷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좋아요. (이 한겅에게) 앉으세요, 대위님.
지:(웃음) 좋아요!
호:먼저 한겅의 팬들이 모두 자랑스럽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고, 특히 제 친구들이 한겅을 부러워하고 있다는 것을 느낍니다. 한겅이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가 된 것은 큰 영광이자 특권입니다!
(박수)
후씨:글쎄요, 제 생각에는... 신사 숙녀 여러분, 이것은 단순한 예술적 성취가 아니라 인생의 영광입니다! 그렇죠?
G:사실 제게는 제 인생에서 실현한 꿈입니다. 항상 저를 응원해준 팬들에게 정말 감사해요. 팬들 덕분에 이렇게 큰 영광의 후보에 오를 수 있었어요.
H: 많은 표를 받으셨다고 들었어요.
고:글쎄요...
(무대 밖:베이징 먼저!)
후:(무대 위) 한겅이 베이징에서 1등 맞죠? 투표하셨어요?
(무대 밖:투표! (청중 박수)
지:저도 당시 자료를 많이 읽고 더 많이 배워야겠다고 생각해서 인터뷰하러 갔을 때 긴장을 많이 했어요.
후:올림픽 관련 지식도 테스트하나요?
G:네. 현장에 도착했을 때 특히 긴장을 많이 했어요. 아주 약하게 말하고 계속 떨면서 질문에 답하고...
후:무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보다 더 긴장하셨나요?
G:너무 긴장했어요! 무대에 올라가서 많은 사람들이 공연을 보고 있다고 하셨잖아요. 사실 전혀 긴장하지 않았어요. 그 당시에는 겨우 대여섯 명만 앉아있었기 때문에 긴장하기 시작했어요.
후씨:그 중 대여섯 명이 밥이라는 걸 알았다면 더 좋았을까요?
(청중 웃음, 겅 웃음)
H:그럴 리가 없죠, 그렇죠?
가오:왜냐하면.... 어떻게요? 시험을 만났을 때 그냥 ...
오, 그렇군요. 얼마 전에 심천에서 행사가 있었나요?
G:네, 맞아요. 세계의 창에서 성화 봉송 주자 출정식이 있었어요. 제가 노래를 부를 때가 되자 많은 팬들이 와서 매우 활기찼어요.
후:저도 노래를 불렀어요. 무슨 노래였나요?
G: (노래) 네, 네, 중국인들이 점점 더 인기를 얻고 있어요! 네, 네, 멋져요!
후:그게 한 동작이에요.
g:맞아요. 모두와 함께 말하고, 모두와 함께 노래하고, 모두와 함께 행동하세요.
후씨:당신처럼 복잡한 공연을 해본 사람에게는 노래나 동작이 어렵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당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무대에 서서 중국을 축복하는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분명 달랐을 겁니다.
G: 베이징 대표 한겅이 발표됐을 때 저는 맨 앞에서 무대까지 달려갔어요. 특히 울고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웠어요. 무대에 서서 성화 봉송 주자가 무대에 오기를 계속 기다렸어요. 드디어 성화를 받았을 때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기분이었어요. 정말 자랑스러웠어요.
후 씨: 성화의 촉감, 질감, 너무 편안해요....
그 느낌은 형언할 수 없는 느낌입니다...
후:저는 성화봉송 주자는 아니지만 올림픽 자원봉사자이기 때문에 성화봉송을 해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성화가 소개되었을 때 그들은 우리에게 성화 봉송 주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행동을 할 자격이 없다고, 즉 성화를 들고 달릴 수 없다고 요청했습니다. 성화를 들고 모든 사람에게 소개하고 모두에게 보여줄 수는 있지만 절대 함께 달릴 수는 없습니다. 올림픽 성화 봉송 주자만이 그렇게 할 자격이 있습니다.
(무대 박수, 겅 웃음)
후씨:성화 봉송을 맡으시게 되나요?
G:베이징에서요.
후씨:베이징에서.... 네, 베이징에서 성화봉송을 맡으세요.
g:8월 7일과 8일이 마지막 날입니다.
후씨:좋아요, 정말 부럽네요. 먼저 박수로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된 한겅을 축하합시다! 그럼 성화봉송 주자인 한겅의 멋지고 아름다운 달리기, 중국인의 달리기를 기원합시다.
(청중: 예!)
영상 내레이터: 2008년 3월, 한겅은 베이징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로 선정되었습니다. 중국 올림픽 위원회는 한겅의 아시아 문화 교류에 대한 공로를 인정했습니다. 한겅의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추천서에는 한겅이 자신의 정체성과 책임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다는 내용이 적혀 있었습니다. 한국과 아시아의 주요 시상식에서 한겅은 한국에서 급부상한 아이돌 그룹의 대표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중국어로 감사 인사를 고집해왔습니다. (시상식 클립, G: 감사합니다, 부모님 사랑합니다!) 중국 문화를 전파하는 가교 역할을 하는 중국 전통 문화를 곳곳에서 홍보하는 것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13살의 나이에 24살의 한겅은 고향인 무단강을 떠나 혼자 베이징으로 가서 무용을 공부했습니다. 어린 한겅은 부상을 입는 일 없이 열심히 연습에 매진했습니다. 한겅은 가족의 부담을 덜어주고 실직한 부모님이 집 밖에서 덜 힘들게 일하게 하기 위해 돈을 모아 방과 후 공연을 하며 돈을 벌기 시작했습니다. 그 힘든 청소년기는 한겅이 앞으로 성장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습니다...
후씨:열세 살 때 베이징으로 가서 중앙민족대학에서 시험을 봤어요.
G:맞아요.
후씨:그 당시 저는 학교에서 무용을 배우고 있었어요. 보이시죠?
g:아주 씁쓸했어요. 어린 시절의 일이었죠. 어린 나이에 시작한 일이었고, 특히 처음 2년 동안은 매우 고통스러웠어요.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서 한 시간 동안 뛰고, 아침을 먹고, 6시 30분부터 10시까지 아주 일찍 출근했죠. 너무 지루했어요. 두 시간 동안 쉬었죠. 왼쪽과 오른쪽 다리를 적어도 5000번은 발로 찼을 거예요.
(청중:오...)
후 선생님:선생님 학교는 공웨이 마을 반대편에 있는 우리 학교와 아주 가깝네요.
G:네, 중앙민족대학입니다.
후씨:이 주변에는 흥미로운 곳이 많아요. 평소 외출을 자주 하시나요?
g:처음에는 외출을 하지 않았어요. 그러다가 좀 나아지고 나서는 친구들과 동물원이나 저렴한 곳을 찾아다니며 그냥 왔다 갔다 했어요. 표를 사고 싶지도 않고 사람들이 '공웨이 촌, 중관촌, 공웨이 촌, 인민 대학교'라고 외치도록 도와주세요! 외치는 걸 도와주고 공짜로 티켓을 줬어요. (그런 식으로요.) 갑자기 ...
후씨:그런 사업이 있는지 정말 몰랐어요. 아마 저도 종종 그 길을 걷기 때문에 당신이 외치는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겅 웃음)
후씨:졸업할 때 시험반에 갔었나요?
G:상하이 황금방패 가무단. 우리 둘 다 선발됐지만 둘 다 가지 않았어요. 당시 저는 어머니께 입단하고 싶다고 말씀드렸어요. 몇 년 안에 못하면 다시 돌아오겠다고요. 어렸을 때 저는 너무 어려서 탈북하기 어려웠어요. 처음에는 친구와 함께 베이징에 살면서 밭을 운영하러 갔어요. 예를 들어 가게 앞에서 론칭 파티가 열리면 한 번은 춤을 추고, 때로는 50회, 때로는 100회까지 춤을 췄죠. 잠시 후 저는 할 일이 없었고 제게는 돈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500위안, 500위안밖에 없어서 심천가무단에 연락을 했어요. 친구도 선전 가무단에 소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500위안을 가지고 티켓을 샀는데, 선전에 도착했을 때 구금되어 있었어요. 그 티켓을 달라고 했지만 안 줬어요.
후씨:가기 전에 물어보지 않았나요? 패스만 있으면 됐습니다.
가오: 그때는 몰랐어요. 제 친구가 친구에게 전화해서 즉시 임시 통행증을 발급받아 저를 데리고 나갔어요. 그렇지 않으면 저는 감독관에게 보내졌고 저는 몇십 달러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후:집에 갈 수 없었어요.
고:집에 갈 수 없었어요.
H:아슬아슬했죠...
G:정말 가까웠어요. 심천에서 6개월, 6~7개월 정도 일했어요.
h:선전 노래 무용단에서요?
g:네, 선전 노래무용단과 세계의 창에서 공연했어요.
후씨:거기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가 되셨군요.
G: 바로 그곳에서 올림픽 성화봉송 주자 발대식이 있었는데, 5년 전 이 무대에 서는 것과 지금 이 무대에 서는 것은 완전히 다르다고 말씀드렸었죠. 성화봉송 주자 출정식이기 때문에 지금 이 무대에 서게 되어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후: 그 순간 특별하거나 운이 좋았다거나 뭔가 뒤틀린 느낌이 들었나요?
G: 그 무대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그 무대에 처음 섰던 날부터 모든 기억을 조금씩 조금씩 떠올리며 살아왔어요. 그 무대에 처음 섰을 때도 그랬고, 친구들과 점심 먹으면서 젓가락 춤을 추던 때도 그랬고요. 친구들과 어울려서 시끄럽게 떠들고 점심을 먹으면서 너무 행복했어요. 라운지가 없어서 옆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고 그 옆에서 밥을 먹어야 했어요. 그때도 행복하다고 느꼈어요. 하지만 지금은 이렇게 바뀌어서 행복하네요...
호:그때도 여전히 한겅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지:변하지 않았어요.
호:내가 지금 이 순간에 당신을 다시 불러들인다면, 당신은 여전히 침체기에서 지금의 높은 곳으로 올라갈 자신감을 가지고 있을까요?
호:분명 이런 무대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신적으로 준비되어 있었어요. 이미 한 번 도전해봤기 때문에 다시 도전할 수 있습니다.
(박수)
영상 내레이터:2001년, 한국 최대의 스타 제작소 SM이 아티스트를 선발하기 위해 중국을 찾았습니다.17세의 한겅은 3,000:1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특유의 춤 카리스마와 훈훈한 외모로 한국 심사위원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갓 태어난 송아지의 풋풋함과 패기, 세상에 대한 동경과 갈망으로 한겅은 짐을 싸서 부모님과 작별 인사를 하고 2년 후 이국땅에서 고난의 여정을 떠났습니다... 2년간의 길고 힘든 훈련 끝에 2005년, 한겅은 그룹 슈퍼주니어로 데뷔해 아시아에서 빠르게 인기를 얻으며 댄스 열풍을 일으켰고, 슈퍼주니어는 한국은 물론 아시아 최초의 그룹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 그룹에서 최고의 댄서였던 중국의 젊은이 한겅도 잊을 수 없는 영광을 꽃피웠는데요... 하지만 곧 한겅은 예상치 못한 큰 장애물을 만났고, 심지어 일부러 신분을 숨기고 가면을 쓰고 공연해야 할 때도 있었습니다. 가면 뒤에 숨은 그의 얼굴 표정은 어땠을까요? 눈물을 흘린 적이 있나요? 지난 몇 년간의 노력과 투쟁이 후회되나요?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여정을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요?
후씨:가면 쓴 남자는 한겅입니다.... 법 때문인 것 같지 않나요?
가오:네...
후씨:무슨 일이야?
G:한국에서 일하고 싶은 외국인은 두세 개 회사만 가입할 수 있어요. 그 당시에는 이 비자에 대해 몰랐어요. 그 당시에는 한국에 간 중국인이 저밖에 없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데뷔 한 첫 중국인은 매우 혼란스럽고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몰랐기 때문에 그 당시에는 ...
후:그들은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어요....
지:네, 한국에서는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일이죠. 그래서 저는 무비자로 아주 가볍게 비자를 받고 공연을 하러 갔어요. 그런데 공연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되더니 정상이 아니라고 하면서 벌금을 많이 물렸어요. 당시에는 비자를 새로 발급받아야 한다고 했고 그게 끝이었죠.
후씨: 그러니까 춤은 끝났지만 비자 없이는 무대에 올라갈 수 없어서 공연에 참석해야 한다면 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거군요.
G:마스크만 쓸 수 있는데....
후:누구 아이디어였어요? 방송국에서 마스크 착용을 제안했나요, 아니면 회사에서 타협안을 마련했나요?
G: 시간 제약이 있었기 때문에 에이전트와 함께 논의했습니다. 결국 에이전트와 상의해서 마스크를 썼어요...
후:당신이 제안하셨나요?
예, 저라는 걸 들키지 않게 하려고요...
후씨:그럼 왜 갔어요? 안 가면?
지:안 되면 전체 편성을 다시 해야 하고, 녹음, 편성, 춤, 시간이 없어요.
호: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하잖아요. 가면을 쓰는 순간...
지:사실 무대 밖에서는 슬프고, 무대 위에서는 행복한데....
후:그런 느낌은 안 드는데...
고:아무것도 안 느껴져요... 가면을 쓰고 다른 사람들과 함께 공연하고 다른 방송국에 가면 왜 안 될까 생각했어요. 그때는 슬펐어요. 무대에 올라가면 모든 걸 잊어버렸어요.
후:그건 가면 아니었나요?
G:숨을 쉴 수가 없었어요. 누가 그 마스크를 썼는지 모르겠어요. 아직도 냄새가...
후:아직도 냄새가... 새 마스크를 찾기엔 시간이 너무 촉박해서....
G:네, 다른 것을 정리할 시간이 없었거든요.
후:다른 멤버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G:다른 멤버들은 괜찮을 거라고 계속 안심시켜줬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웃는 것뿐이었어요. 괜찮다, 괜찮다, 조금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말했죠. 그게 저희의 대화 방식이었어요. 무대에 오를 때마다 모두가 "파이팅!"을 외쳤어요. 파이팅! 고 한겅'이라고 외치죠.
후 씨: 특별히 행복하게 해드릴게요... 직접 내려오셨을 때 기분이 어땠나요?
가오: 내려올 때 기분이 어땠는지 말씀드릴 수 없네요. 그냥 빨리 끝내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공연하고 싶었어요.
후:직접 보셨나요? 이 공연 영상은 나중에 보셨나요?
(겅이 고개를 저으며)
후:감히 볼 엄두를 못 냈어요....
G:한 번도 안 봤어요. 그냥 공연할 때 봤어요.
호:사실 한겅을 좋아하는 많은 사람들이 말하기 싫어하지만 저는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알아보는 좋은 전환점이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다들 한겅이 좋은 멤버라고 생각하고 한국에서 열심히 하는 걸 알고 있었는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이동해가 한겅이 있다는 것에 별 관심이 없던 일반 시청자들도 갑자기 이상하게도 1위로 뛰어올랐네, 잘 뛰었네, 최고인데 왜 저 사람 얼굴이 안 보이냐... 이런 생각을 하게 될 거예요. 무대에서 기꺼이 가면을 쓴다는 사실은 매우 귀중한 자질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데 왜 다른 사람이 쓰고 냄새나는 마스크를 써야 하나요? 내가 왜 무대에 올라가서 이걸 하고 싶은 걸까? 다시 시도하면 아무도 저라는 걸 모를 거예요. 제가 왜 그러겠어요? 하지만 방금 말씀하신 것 때문에 팀 전체 쇼를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네요. 본인도 힘들었나요?
G: 당시에는 데뷔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희망이 없었어요. 데뷔할 수 있는 기회를 포기하고 싶지 않았어요. 그룹이 다 끝나고 소식이 없었어요.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도와주고 싶었어요. 그룹 전체가 유명해지면 자연스럽게 저도 유명해지고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다들 도와줬어요...
호:좋은 지적이네요, 모두가 잘되면 저도 잘되는 거잖아요?
(박수)
하:사실 한겅이 한국에 있을 때, 특히 무대에 올라가서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 많은 분들이 도와주셨어요. 이동해를 응원하는 것 외에도 사람들이 한 번쯤은 그를 응원해줘야 했죠. 그게 일종의 도움이었죠. TV에서 그의 공연을 보고 그가 매우 실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생각하지 못한 또 다른 사람이 있었어요. 그러다 한겅 본인을 포함한 모든 겅라이가 특히 고마워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그의 이름은 강후동이고, 한국 버라이어티의 선배 형님이라고 해야 할 것 같아요.
지:맞아요.
허:한겅을 좋아하는데, 모두가 한겅을 좋아하니 당연한 일이죠.
(청중 웃음과 박수)
후:하지만 한겅을 특별히 챙기시죠. 장삼촌이 한겅에게 얼마나 잘해주는지 보세요....
(영상:2006년 강후동 라한곤이 진행했던 한국 예능 프로그램 '러브레터'의 명장면)
지:그때가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처음 출연했을 때였어요. 그때는 한국말이 서툴렀는데...
호:처음 공동 진행을 맡아달라고 했을 때, 그 코너가 정말 기억에 남아요.
(겅 웃음)
호:그때는 그들이 무엇을하는지 몰랐군요....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는 알지만 어떻게 하고 있었는지,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지는 몰랐을 수도 있죠...
G:맞아요. 그땐 몰랐어요...
후:좋은 대답이네요. 혼란스러워하면서 아는 척하는 게 정말 중요한 거죠.
(겅 웃음)
G: 저도 혼란스러웠는데 갑자기 호출을 받았어요. 하지만 막상 올라가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냥 따라갔어요. 그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만 할 수 있거든요. 그렇게 재밌는 줄 몰랐어요.
후씨:맞아요. 처음 만났을 때였나요?
G:맞아요.
후씨:그의 쇼에 처음 출연하셨나요?
g:처음이죠.
후씨:그때 그는 당신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죠.
g:네, 쇼를 녹화할 때도 항상 저에게 말을 걸고, 말을 하게 하고, 카메라에 나올 기회를 더 많이 주셨어요. 게임처럼 아주 단순해서 무언가를 쏘면 다리가 무너지는데, 그가 저 위에서 '한겅, 그렇게 쏘지 마! 더 재미있는 걸로 바꿔! 발로 쏴봐요! 저는 알았다고 하고 다시 시작했는데 그게 끝이었죠...
후씨:잘라낼 때 더 흥미롭고 재미있게 만들려고요. 다리 설계를 도와주셨군요...
G:설계를 도와줬어요.
후씨:정말 마음에 들어요, 제가 처리할게요.
(박수)
후씨:2006년 후반에 회사에서 당신을 중국으로 여행할 수 있도록 주선해줬죠....
가오: 네, 가족을 보기 위해 돌아왔어요. 그냥 가족을 보려고...
후:그럴 줄은 몰랐어요...
G:KM TV에서 저를 따라다니며 중국 여행에 관한 영화를 찍을 줄은 몰랐어요.
후:팬들이 많이 생각해서 중국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돌아올 때 해고될 거라며 인기를 시험하는 거라고 했어요.
(겅 웃음)
G:사실 걱정이 너무 많았어요.
후:팬들이 당신을 위한 공연을 기획하고 싶다고 들었어요. 지금은 그들이 너무 걱정을 많이 했다는 것을 알지만, 당시에는 사람들이 정말 그런 걱정을 했고, 한겅의 음반사에서는 그가 중국에서 출연이나 프로모션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중국 팬들이 이미 한겅을 너무 지지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비행기를 탔던 거죠?
G:네, 제가 나왔을 때는 정말 어이없었어요.
후:바보 같았어요? 울었어?
G:울지는 않았지만 신났어요.
후:자랑스러워요?
고:행복해요. 집을 나서자마자 행복했어요. 저는 비행기에서 쉽게 잠드는 사람인데, 돌아오자마자 눈을 떴어요.
후:그걸 표현하는 사자성어가 있는데, '옷 벗고 집에 돌아온다'는 말이 있지 않나요?
(박수)
영상 내레이터: 2006년 5월, 한겅은 한국 아이돌 그룹 슈퍼주니어의 대표로 대망의 첫 중국 귀환을 했습니다. 한겅과 그의 팀은 중국 언론에 공식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었지만, 중국 팬들은 이미 인터넷을 통해 외국에서 일하는 이 미남 청년을 알게 되었고, 공항의 열광적인 팬들은 이제 막 조국의 땅을 밟은 한겅에게 큰 따뜻함과 힘을 느끼게 해주었습니다.... 이번 고향으로의 여행은 한겅이 마침내 오랜만에 아버지와 재회했다는 것이 더 큰 보람입니다 ...
저가 아버지를 닮았나요?
후씨:네 아버지는 아주 잘생긴 것 같은데....
지:네, 아버지는 가끔 제가 당신보다 훨씬 잘생겼다고 말씀하시죠!
(청중 웃음)
후씨:무단강에 있을 때 아버지와 술도 마셨나요?
가오:말도 안 돼요...
후씨:말도 안돼.... 몇 년 동안 아버지와 몇 번이나 술을 마셨는지 세어봤어요?
G: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야겠네.
Mr Hu:한 번 뿐이라고요?
g:아버지와 함께 술을 마신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해야겠네요.
후씨:카메라 앞에서... 아버지는 저에게 의리를 느끼게 해준 사람이었죠, 그렇죠?
고:네, 맞아요. 아버지는 항상 무슨 일이 생기면 저에게 전화하면 제가 가장 좋은 해결 방법을 알려주겠다고 말씀하셨어요.
후:엄마 어딨어? 엄마가 방금 뭐라고 했어요...
G:특별한 마음에서 나온 말...
후:부모님이 키가 작다면...
g:부모님이 키가 작으면 몸에 더 신경을 써야 해요. 글쎄요... 제가 한국에 있을 때 어머니가 많이 상심하셨어요. 전화할 때마다 울면서 더 이상 버틸 수 없으면 엄마한테 돌아오라고 하셨죠...
후씨: 어머니는 언젠가 당신이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걸 어떻게 아셨나요? 엄마한테 힘들다고 말했나요?
가오:그 당시에는 말하지 않았어요. 제가 전화했을 때 ...
후:네가 먼저 울었어?
G:음... 정말 힘들었어요. 그냥 엄마와 얘기하고 싶었어요. 그게 다였어요. 그러다 전화해서 울었어요. 제가 울고 나니 엄마도 울면서 아들이 더는 못 버티겠으니 돌아와 달라고 하셨어요. 엄마가 좀 더 노력해도 괜찮다고, 그게 다예요.
호:실제로 엄마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을 말씀하신 게 아니라 그냥 엄마 목소리를 듣는 게 견딜 수 없었다는 거군요.
Ho:그렇군요...
(겅의 눈이 젖어 있다)
h:...
후:저도 한겅의 엄마를 만났는데 정말 예쁘신 것 같아요.
(겅 웃음)
Hu:아주 간단해요. 언뜻 보기에는 힘들어 보이지만 과도한 욕심은 없어요. 그저 아이가 건강하고 바르게 자라서 특별한 엄마의 엄마가 되길 바랄 뿐입니다.
(박수, 겅은 여전히 울고 싶은 욕구를 억제하고 있습니다.)
후씨:엄마와 한겅의 사진을 보세요. 정말 귀엽네요. 만두집에도 가봤는데, 만두집 이름은 한겅이 한국에 있을 때 매화집이라는 곳에 자주 갔기 때문에 한겅의 엄마가 만두집을 열면서 매화만두집이라고도 불렀어요.
지:맞아요.
호:한겅은 엄마가 운영하던 만두집은 아주 평범한 만두집이었다고 말했어요. 저는 유명인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을 많이 가봤거든요. 유명인 가족이 운영하는 식당이 평범할 수 있을까요? 나중에 가서 보았어요. 정말 평범했어요! (웃음) 골목길에 있고 전면도 작고 테이블과 의자도 소박한데 맛도 좋고 분위기도 특별하더라고요. 아시아 슈퍼스타의 어머니가 골목에서 운영하는 만두집이에요.
(청중 박수, 겅이 조용히 고개 끄덕임)
후씨:지점을 낸 것 같네요?
G:(웃으며) 네.
그렇습니다.
H:지점이 더 커졌나요?
g:이번엔 더 커졌어요.
후:더 커졌어요. 그리고 사진도 걸려있나요?
(웃음)
후:원래 이름이 뭐였나요? 플래그십 스토어? 첫 번째 가게는 뭐라고 불러야 할까요?
(무대 밖:본사!)
후씨:본점에 제 사진이 있는데, 이 지점에는 더 있나요?
G:네.
후씨:그 지점에도 제...
G:본점에서 다른 사진을 현상했는데요...
후씨:아니요, 제가 직접 지점에 가서 사진을 찍어야 해요.
(겅 웃음, 방 전체가 웃음)
후씨:클럽 만두라고도 하나요?
지:메이화 가족 구성원인 자오즈.
호:매화 가문의 일원인 자오즈....
g:따뜻해졌어요.
호:이제 엄마의 만두를 광고할 세 문장을 알려드리겠습니다.
(박수)
h:아무 말이나 하세요.
G:솔직히 말해서 어머니는 여전히 제 행복을 위해 애쓰고 계세요. 이번 베이징에서는 엄마가 돈을 받든 제가 받든 매일 행복해하시는 것 같아요. 어머니가 매일 행복해하는 것이 저의 가장 큰 소망입니다. 부활한 매화 가족과 함께 있는 자오즈는 저에게 더욱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제 어머니는 고통을 감내할 수 있는 여성이라고 생각해요. 그리고 저는 어머니를 위해, 어머니를 위해 많은 것을 기꺼이 해드리고 싶어요.
(박수)
h:... 이거 광고인가요? 엄마와 가족을 행복하게 하는 5월의 가족, 자오즈 광고가 생각나네요...
(박수)
후:비밀 하나 말해줘도 돼요?
(무대 밖:네!)
후:하지만 나중에 비밀을 말하지 않을까 봐 조금 무서워요. 왜냐하면 제가 그의 비밀을 모두에게 말했고 그건 친구에 대한 배신이기 때문이죠.
(오프스테이지:비하인드 스토리!)
후씨:그럼 여기서 말할게요, 알겠죠? 그냥 여기서 말할게요.
(오프스테이지:알았어요.)
지:(웃음) 우리 둘의 뒷이야기.
후:한 겅이 저를 데리고 후하이의 강변을 산책한 적이 있어요. 그는 친구가 운영하는 술집에 데려가고 싶었는데... 몰랐어요.
(겅 웃음)
후씨:길을 몰라서 먼 곳에 주차를 했어요. 나는 옷을 거의 입지 않았고 그는 더 적게 입고 있었고 우리 둘 다 얼어 붙었습니다. 이때 한겅이 제게 한 말이 있는데, 제가 아는 제 또래의 어떤 사람도 제게 한 적이 없는 말이었어요. "선생님, 제게 여자 친구를 소개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요.
(겅 웃음, 방 전체가 웃음)
후 선생님: 지금 생각 중이시군요, 그렇죠?
예, 누군가를 찾고 싶어요...
(청중 환호)
후씨:중국 여자를 원해요.
G:네, 괜찮아요, 좋은 게 있다면, 느낌이 있다면요.
(청중 웃음)
후씨:몇 가지가 바로 떠올랐어요.
(무대 밖:누구?)
후씨:서로 잘 모르시잖아요. 그냥 물어보고 싶어서요, 뭘 찾으시는 건가요? 나중에 제가 찾을 수 있게요. 알았어요, 제가 들고 있을게요.
(청중 웃음)
G:친절과 아름다움이 거의 전부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것인데, 제가 엄마와 자주 떨어져 있기 때문에 엄마가 저를 더 이해하고, 저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저도 엄마에게 친절하게 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후:마음에 드는 사람을 만나서 소개해 주면 뭐라고 말하겠어요?
고:모르겠어요. (웃음) 부끄러워서요...
(청중 웃음)
후:직접 말하거나, 편지를 쓰거나, 문자를 보내거나...?
G:문자, 문자를 보내야지...
후씨:아니면 친구에게 전해달라고 부탁해.
가오:그럴 일은 없을 거야. 제가 문자를 보낼게요.
후:내가 직접 하는 게 진심을 담을 수 있겠죠?
G:네, 전화로는 그런 말을 못 할 것 같아요. 그냥 문자를 보내서(웃음) 보내면 되죠.
(웃음)
가장 로맨틱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지:택시를 타고 집에 데려다줄 수도 있었지만, 지하철역에서 집까지 계속 같이 걷고 또 걸었어요.
호:평범한 소소한 행복이군요.
지:네, 평범한 행복이면 충분해요.
앞으로 가장 로맨틱한 장면은 무엇인가요?
그:그녀와 함께 해외여행을 가고 싶어요....
후: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지하철역에서 내려서 걷는....
고: (웃음) 피곤하죠...
힘:메이화자 만두집까지 걸어가서 엄마와 저녁을 먹는 거요.
지:네. 엄마와 가족들과 함께 식탁에서 식사하는 것이 정말 좋았어요. 나중에 엄마와 함께 집에 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곤 했어요. 베이징으로 돌아가서 엄마를 한 번 뵈었기 때문에 시간이 없어서 엄마가 계속 전화해서 몸조심하고, 일찍 자고, 일찍 자라고 말하곤 했어요.
호: 한겅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부터 말씀해주시죠.
(그와 겅이 모두 일어남)
호: (청중에게) 바로 당신입니다.
(박수)
겅:내 마음속에는...
후:이 사람은 일어나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G:제 마음속에는 정말 너무 중요해요. 왜냐하면 제가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모든 분들이 제 포스터 등을 들고 응원해 주셨고, 모든 발걸음과 모든 성과는 그분들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기 때문이죠.
(박수)
그: (청중에게) 한겅 외에도 감사하고 싶은 분들이 많은데, 우리 모두 알다시피 한겅은 정말 착한 소년이기 때문이죠. 한 번은 후난성 재난 구호 파티에서 그의 요청으로 이름을 공개하지 않았는데, 한국에서 전화가 와서 인터넷에서 중국의 눈보라를 봤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직접 전화를 걸어 "허씨. 다음 날 재난 구호 파티가 있다고 했어요. 제가 대신 기부할게요. 그는 그렇다고 말했지만 제 이름은 말하지 말아주세요. 이 사건은 실제로 많은 쌀을 만졌고, 도움이 필요한 곳이라면 전국 각지에서 일련의 사랑의 자선 활동을 펼쳤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박수)
(배경음악 '사랑의 날개', 안내 영상, 자막:한겅의 사랑에 영향을 받아 전국 11개 성 지부의 382명의 겅 팬들이 사랑을 위해 모여 SOS 어린이 마을, 산간 초등학교 등을 방문하고 기부, 기부, 생명 사랑에 헌신).
G(및 청중): ('사랑의 날개' 노래) 우리의 사랑은 당신의 날개가 되어 폭풍우를 건너갈 힘을 줍니다. 당신의 행복은 우리의 소원입니다. 당신에게 속한 천국을 건설합시다....
(끝:사랑의 날개 및 관련 정보 클립)